예기치 못한.

April 11th, 2015 | Taste.of.Cherry | No Comments »

이래저래 버드맨 신드롬 속에 살고 있다.

첫 씬, 당신의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항상 이렇다. (물론 속내로만)

일하지 않는 시간을 위해 (겨우겨우) 일을 하는 것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우선 순위를 뽑자면 일 혹은 천문학 자체는 최하위를 근근할 것이다.

살아오면서 느낀 점은?

저 단순한 꿈을 이루기가 어쩌면 무엇 무엇이 될거에요 보다 훨신 어렵다는 것이다.

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전제 되어야 할 것은, 일을 하는 시간과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은 일종의 독립성을 띄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일의 유령’이 계속 머리를 배회하게 된다. 쌓인 감정이 일하지 않는 시간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인정 욕구’

한번도 내 자신을 위해 일을 잘해 보자고 한 적은 없다. 그냥 밥벌이니까 하는 일인데…

드문드문 내 속에서 ‘인정욕구’가 꿈틀꿈틀 기어오르면 스스로가 많이 당황스럽다.

놀랍게도 돌이켜보면 많은 감정적 앙금이 그로 인해 기원할 때가 많다. (이것이 버드맨의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와는 일치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둘째 씬, 예상과는 너무나 다르게,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다. (조금은 어색하지만 행복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을 만한 시간이었다).

교육이 훌륭했다거나, 훈육의 시간이 생산적이었을리는 없을터.

그저 낯선 사람들, 장소들, 공유하지 못할 감정들 그런 것들이 뜻밖의 평화로움을 줬다.

다시 버드맨 신드롬을 대입하자면,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으로” 조금은 날아본 셈이다.

셋째 씬, 5월 초 연휴에 다시 어딘가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어디로? 그저 낯선 곳이면 어디든지.

내일을 위한 시간

February 8th, 2015 | Taste.of.Cherry | No Comments »

피해자와 피해자가 뒤엉켜 싸우는 현실 속에서,

결코 요란할 수 없는 개인의 뒷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

아무렇지 않게 약 한 통을 삼키고

계단 아래 동지가 하나 늘어나는 그 시점처럼, 현실에는 극적인 장면은 없다.

다만 순간의 연속이 있을 뿐. (아마도 내가 아는 영화 속 최고의 순간.)

배척된 채로 – 황병승

우리에겐 우리들만의 승리가 있다

그러니 모든 길과 광장은 더러워져도 좋으리

술병과 전단지와 색종이 토사물로 뒤덮여도 좋으리

창가의 먼지 쌓인 석고장은 녹아버려라

거추장스러운 외투와 속옷은 강물에 던져버려라

우리에겐 우리만의 승리가 있다

배척된 채로

배척된 채로

젖은 마음 – 김민정

February 1st, 2015 | Taste.of.Cherry | No Comments »

쉴새없이 날라드는 따귀들 사이에 은근 슬쩍 내 손을 참여시키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삶이 되어버렸다.

어디선가 따귀가 날아들었다
얼굴이 돌아갔다
백팔십 도라면 호소해봤을 텐데
삼백육십 도였다
한 번 꼬인 목은 꽈배기 축에도 못 꼈다
이해받을 수 없는 통증이라면
혼자 꾹 참는 게 나았다
병신 같은 년이란 욕을 먹었다
그보다 더 정확할 수는 없어서
베시시 웃었다

가면의 생…

December 6th, 2014 | Taste.of.Cherry | No Comments »

시작이란 없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사람은 각자의 차례대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고는 어딘가에 소속된다….

나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내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를 줄곧 찾고 있다. 동류 의식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겹겹히 쌓인 기억은…

November 30th, 2014 | Taste.of.Cherry | No Comments »

압도적인 영화 한 편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그간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던 ‘보이후드’가 계속 생각이 났다.

‘보이후드’로 말할 것 같으면, 근래 보았던 영화 중 가장 좋았는데 (‘디아워스’나 ‘세상의 모든 계절’에 견줄만 했다.)

영화관에서 두 번을 보고도 글로써 딱히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애초에 그러하듯, 누구의 삶이든 몇 마디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메이슨을 대학에 보내며 메이슨의 엄마가 ‘나는 이것 이상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얘기 했을때,

낙성대 지하철 역에서 마지막 배웅을 하고 돌아서며 울먹이던 엄마가 생각이 났다.

그 울음은 어쩌면 헤어짐의 아쉬움과 본인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의 회한이 뒤범벅된 축적된 세월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3시간이 좀 안되는 영화 속에서 그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다.

종종 비포 시리즈의 순간 순간들이 겹겹히 쌓인 영화처럼 느껴졌는데,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결국엔 그런 (짧게 웃을 수 있었던) 순간들 때문이지 않은가…

흔하게 Coldplay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대인데.

첫 시작의 ‘Yellow’는 정말로 좋았다.

마미

November 30th, 2014 | Taste.of.Cherry | No Comments »

과거 30여년과는 다른 형태로 삶이 퍽퍽해지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원하지 않는 자극이 지나치게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감정적으로 유난히 힘들었던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의 내용과는 그닥 상관이 없는 현실에서의 ‘자극’에 대한 반응들이 솟구쳐 나왔다.

그래서 결국엔 영화는 내가 세상을 보는 창이 될 수 밖에 없는 셈인데.

그 창이 인스타그램처럼 네모나고, 정사각형의 틀 속에서 한없이 인물의 표정에만 집중하다 보면…

조금은 자의적이게도 내 신세가 중첩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들의 욕지거리도 이웃집 여자의 억눌림도

‘내 삶은 승리’라고 결국 패배의 쓴 잔을 들이킬 수 밖에 없는 엄마의 그 헛헛함마저도…

두 번째 화면이 열렸을 때, 다른 영화의 어떠한 장면과 유난히 유사했다.

그 열린 화면이 다시 닫히는 순간, 마치 영화의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길거리를 나설때의 어떤 서늘함 같은 것을 느꼈는데…

그래서 더욱 압도적이었다.

마지막 노래는 주인공의 이름 답게 ‘Born to die’

삶의 빈틈 – ‘우리도 사랑일까?’

November 1st, 2014 | Taste.of.Cherry | No Comments »

뭐랄까 결이 참 좋았다.

화면이 좋았고.

이런 이야기는 영화만이 할 수 있다는 듯이, 소리와 화면과 이야기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모두가) 실패하고 말거라는 얇게 깔린 가정이 좋았으며.

결정적으로 어떤 ‘선택’의 문제로 치환하지 않았으며.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결코 채울 수 없는 삶의 빈틈 때문이라는 씁쓸한 진실도 참 좋다.

이상한 사람…

October 17th, 2014 | Taste.of.Cherry | No Com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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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hombre extraño (이상한 사람) – Silvio Rodríguez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었네,
어쩌면 그리들 여겼던 탓이겠지.
자기 가는 길에 발견하는 것은,
자기 가는 길에 발견하는 것은,
모두 입을 맞추었기 때문이지.

사람들에게, 강아지에게,
가구에 입을 맞추었네.
그리고 어느 방 창문을,
어느 방 창문을
달콤하게 깨물었네.

거리에 나갈 때는
온 동네에 입을 맞추었네.
모퉁이마다, 인도마다,
집 입구마다, 시장마다.
영화를 보는 밤이면

(또한 연극이 있는 밤이면)
객석에 입을 맞추었고
옆 자리에도 입을 맞추었네.

이런 일들 때문에, 다른 비슷한 일들 때문에
정상인들이 그를 데려갔네.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할 곳으로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 곳으로,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 곳으로.

그리고 사람들은 말하지.
감방에서 자기 구두에,
자기 침상에, 창살에,
주위의 흙벽에,
주위의 흙벽에 입을 맞추었다고.

어느 날, 소식도 없이,
그 이상한 남자가 죽었다네.
그리고 당연히
그를 땅에 묻었지.
바로 그 순간,
하늘을 나는 새들은
지상에 입술이
탄생했다는 것을
발견했다네.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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